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한국도 피할 수 없을까?

1990년, 일본 도쿄의 황궁 부지 가격이 미국 캘리포니아 전체 땅값과 맞먹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소니, 도시바, 혼다 같은 일본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장악했고, 도쿄의 야경은 뉴욕을 능가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번영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기나긴 침체의 터널 속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경제 대국은 어쩌다 활력을 잃고 주저앉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지금 대한민국은 30년 전 일본의 모습을 놀라울 정도로 닮아가고 있는데, 과연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피할 수 있을까요?

일본의 비극은 198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비극은 1985년 ‘플라자 합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극심한 무역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일본과 독일을 압박하여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엔화와 마르크화의 가치를 높이는 데 합의합니다. 이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입니다.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체결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합의의 결과, 엔화 가치는 불과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폭등했습니다. 1985년 1달러에 240엔이던 환율이 1987년에는 150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급격한 환율 변동 중 하나였습니다. 엔화 가치가 오르자, 일본의 수출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도요타, 혼다, 소니 같은 일본의 주요 수출 기업들은 매출이 급감했습니다. 자동차 수출이 줄어들었고, 전자제품 판매도 급락했습니다.

초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버블을 만들었습니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수출 기업을 살리고 내수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하하는 초저금리 정책을 펼칩니다. 기준금리를 5%에서 2.5%로 낮추고, 이후 계속 인하하여 1%대까지 끌어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시중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은 갈 곳을 잃고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은행들은 너도나도 부동산 담보 대출을 늘렸고, 사람들은 빚을 내서 집을 사고,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부동산 중개소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고, 주식 시장은 매일 신고가를 경신했습니다.
당시 일본의 신문과 잡지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연일 보도했습니다. 집을 사면 무조건 번다는 믿음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회사원들은 월급의 몇 배에 달하는 대출을 받아 집을 샀고, 주부들은 남편 몰래 주식 계좌를 만들어 투자했습니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집을 담보로 또 다른 집을 사는 ‘부동산 레버리지’에 손을 댔습니다.

버블의 정점, 닛케이 지수 38,915포인트

도쿄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도쿄의 일부 지역에서는 평방미터당 가격이 수천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1989년 말, 닛케이 지수는 역사상 최고점인 38,915포인트를 기록하며 버블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모두가 영원할 것만 같았던 축제에 취해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일본 경제는 세계 최강이며, 이제 일본의 시대가 왔다’고 외쳤습니다. 아무도 거품이 터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경제학자들도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영원히 오른다’고 믿는 것과 정확히 같은 심리입니다.

거품의 붕괴, 그리고 30년의 침체

하지만 모든 거품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입니다. 자산 가격이 과도하게 올랐다고 판단한 일본은행은 1989년부터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합니다. 불과 1년 만에 기준금리를 2.5%에서 6.0%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는 매우 급격한 인상이었습니다.
그러자 빚을 내서 투자했던 사람들은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동산과 주식을 헐값에 팔기 시작했습니다. 자산 가격은 폭락했고, 거품은 순식간에 꺼져버렸습니다. 닛케이 지수는 1년 만에 반 토막이 났고, 부동산 가격은 10년 넘게 하락을 거듭했습니다. 도쿄의 아파트 가격은 절반 이상 내려갔고, 일부 지역에서는 70~80%까지 떨어진 곳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2억 원에 샀던 집이 5천만 원이 되어버렸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동산을 담보로 막대한 돈을 빌려줬던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부실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차입자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급증했습니다. 일부 은행은 문을 닫았고, 일부는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습니다. 기업들은 도산했고, 실업자는 급증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일본의 실업률은 2%에서 3%로 올라갔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높은 수치였습니다.
가계는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소비는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일본 경제는 ‘자산 가격 하락 → 금융 부실 → 실물 경제 침체 → 소비 위축 → 디플레이션’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이었습니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침체를 심화시켰습니다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일본 정부는 10차례 이상의 경기 부양 패키지를 추진했습니다. 도로, 다리,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에 수백조 엔을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는 비효율적이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도로가 지어졌고, 이용객이 거의 없는 공항이 지어졌습니다. 산골짜기에 지어진 다리는 하루에 몇 명도 건너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부채는 계속 늘어났지만,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부실화된 은행과 기업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하지 못하고 ‘좀비 기업’으로 연명시키면서,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렸습니다.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정리하지 않고 계속 보유했고, 기업들은 혁신하지 않고 과거의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기업이 성장할 기회를 빼앗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디플레이션의 덫’이었습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사람들은 소비를 미루고 기업은 투자를 꺼리게 되었습니다. 돈의 가치는 오르지만, 실물 자산의 가치는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은 경제 주체들의 활력을 앗아가고 경제를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뜨렸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사면 나중에 더 싸질 테니 기다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기업들은 ‘지금 투자하면 나중에 손해 볼 테니 기다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심리가 3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일본 경제는 성장하지 못했고, 임금은 오르지 않았으며, 젊은이들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한국 경제, 일본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떨까요? 놀라울 정도로 30년 전 일본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첫째, 부동산 버블과 가계부채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초저금리 기조 속에서, 대한민국 역시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가계부채가 급증했습니다. 2025년 현재 가계부채는 1,900조 원을 넘어섰으며,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입니다.
부동산 가격이 조금만 떨어져도 가계 자산이 급감하고,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특히 전세 시장의 불안정성이 심각합니다. 전세금이 돌아오지 않는 사태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둘째,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대한민국은 일본보다 더 심각한 인구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2024년 출산율은 0.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감소하기 시작했고,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잠재성장률 하락과 내수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30년에 걸쳐 경험한 인구 감소를 한국은 더 빠른 속도로 겪고 있습니다. 2050년이 되면 한국의 인구는 3,7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셋째,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대한민국의 주력 산업은 중국의 거센 추격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인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본의 전자 산업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한순간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의 추격이 빨라지고 있으며, 전기차 시장에서도 테슬라와 중국 기업들에 밀리고 있습니다. 조선 산업도 중국에 밀려 수주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넷째, 정부의 정책 방향성

부실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미루고, 단기적인 경기 부양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과거 일본 정부의 정책 실패를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이연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부실 기업의 만기를 연장해주고, 이자를 깎아주는 방식으로 임시방편을 내놓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일본과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이 일본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IT 기술과 역동적인 벤처 생태계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으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기업들은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IMF 외환위기 학습 효과

우리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뼈아픈 구조조정을 경험했고, 위기 대응 능력을 키웠습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은 과거보다 훨씬 튼튼해졌습니다.

글로벌 팬덤을 가진 K-컬처

BTS,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 등으로 대표되는 K-컬처는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처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요인들만 믿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구조적인 문제들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복합적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해야 할 4가지 생존 전략

그렇다면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그리고 개인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1단계: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벗어나기

인구 구조가 변하고,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영원히 오를 것이라는 믿음은 매우 위험합니다.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자산 배분’ 전략이 필요합니다. 부동산의 비중을 80%에서 60%, 50%으로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현명합니다.

2단계: 원화 자산 다각화

대한민국 경제가 어려워질 때, 원화 가치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달러, 금, 해외 주식 등 원화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안전자산’을 포트폴리오에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전체 자산의 20~30%는 달러나 해외 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3단계: 빚을 줄이고 현금 흐름 확보

다가올 위기 상황에서 빚은 가장 큰 족쇄가 될 것입니다. 불필요한 대출을 줄이고, 월급 외에 추가적인 수입을 만들 수 있는 자신만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합니다. 부업, 배당금, 임대료 등 다양한 형태의 수입원을 만들어두면, 위기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4단계: 변화에 적응하고 끊임없이 학습

AI 시대의 도래와 산업 구조의 변화 속에서, 과거의 성공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전문성을 키우며, 어떤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이라는 최고의 자산에 투자해야 합니다. 경제학, 금융, 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이 행동할 때입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을 줍니다. 거품은 영원할 수 없으며,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한 대가는 혹독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역사적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일본의 길을 따라 장기 침체의 늪으로 빠질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낼 것인가.
그 해답은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있습니다. 위기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은 경제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 결정은 개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과거의 성과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으며, 투자 전에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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